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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공부를 하기 전, 나는 실적이 '성장'했다는 뉴스만 보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영업이익이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좋아졌다고 하면, 당연히 기업의 경쟁력이 좋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회계를 공부하고 실제 사례들을 분석하다 보니, 실적이 좋아졌다는 뉴스 뒤에 숨은 '의도된 착시'를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회계 조작이라는 표현이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숫자를 조정하거나 일부러 이익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실적 성장이 실제 경영 성과인지, 아니면 회계적 착시인지 구분하는 법을 내 경험과 함께 정리해보려 한다.
1. 실적 성장은 회계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회계는 객관적인 숫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규칙 안의 선택'이다. 같은 매출이라도 수익 인식 시점이나 비용 처리 방식에 따라 이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① 수익 인식 시점의 차이
예를 들어 건설업이나 IT SI 업체는 장기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때 매출을 인식하는 방식에는 ‘완성기준’과 ‘진행기준’이 있다. 진행기준을 사용하면 계약이 끝나지 않아도 일정 비율만큼 매출로 인식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예전에 투자했던 한 IT 기업은 수년간 꾸준한 실적 성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나중에 회계 기준 변경으로 인해 이전에 인식했던 매출 일부가 환입되며, 수익이 과대계상됐던 것이 드러났다. 주가는 급락했고, 나는 그때 회계 기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② 감가상각·충당금 설정
감가상각이나 충당금 설정은 대표적인 ‘경영자의 재량’ 영역이다. 예를 들어, 내용연수를 길게 잡으면 감가상각비가 줄어들고, 이는 이익 증가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대손충당금을 낮게 설정하면 손익계산서상의 비용이 줄고, 순이익은 증가한다. 이런 회계 처리를 통해 이익을 조정하는 것은 합법적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제 성장이 아닌 '착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2. 실적이 늘었는데 주가는 떨어지는 이유
종종 기업이 좋은 실적을 냈는데도 주가는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이익의 질'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숫자는 좋아졌지만, 시장은 그 숫자가 반복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① 일회성 이익
자산 매각, 소송 승소, 지분 처분 등은 기업 실적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본업과 관계없는 수익이다. 예컨대, 모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대규모 이익을 냈고,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언론은 '사상 최대 실적'이라고 떠들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줄었고, 주가는 이익 발표 후 하락했다. 실제 수익성이 아니라, 비경상적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② 영업이익 감소 vs 순이익 증가
나는 개인적으로 '영업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순이익은 세금, 이자, 기타수익 등 많은 외부 요인에 따라 조정되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기업이 순이익만 증가할 경우, 그 차이를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회계상 조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3. 실적 조작 신호를 읽는 5가지 질문
회계 공부 이후 나는 기업의 실적 발표를 볼 때마다 다음 5가지 질문을 습관적으로 던진다. 이 기준은 실적 성장이 회계 조작이 아닌지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① 영업현금흐름은 개선되었는가?
이익이 늘었어도 현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는 회계상 수익일 수 있다. 특히 외상 매출이 급증하거나 재고가 급증하는 기업은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현금이 움직이는지를 현금흐름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②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은 적정한가?
매출채권이 급증했는데 현금흐름이 감소한다면, 이익을 부풀리기 위한 외상 판매가 늘어난 것일 수 있다. 또한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면 판매가 원활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③ 이익 증가 요인이 반복 가능한가?
이번 분기의 이익이 자산 매각, 환율 효과, 회계정책 변경 등으로 발생한 것이라면, 다음 분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 실적의 반복 가능성은 '진짜 성장'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④ 감가상각, 충당금 비중은 변했는가?
감가상각비가 전년 대비 현저히 줄었거나, 대손충당금이 감소했다면 이익을 인위적으로 조정한 가능성이 있다. 해당 항목이 자연스럽게 변화했는지 IR 자료나 주석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⑤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은 어떤가?
'적정' 의견이 아니라면 반드시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감사의견 한정이나 강조사항에 '지속기업 불확실성' 언급이 있다면,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리스크가 크다.
4. 실전 경험: 이익 성장에 속았던 투자
나는 과거 반도체 장비 관련 기업에 투자한 적이 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큰 폭으로 성장했고, 분기마다 실적 발표만 나오면 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한 분기에 갑자기 실적이 꺾였고, 주가는 반 토막 났다. 이후 분석해보니, 감가상각 방식 변경과 고객사 일회성 주문이 주된 원인이었다. 즉, 회계적 요인과 비경상적 이익에 의한 성장이었다. 이 경험 이후, 나는 숫자만 믿지 않고 반드시 그 숫자의 배경을 분석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5. 결론 – 실적은 숫자보다 맥락이 중요하다
실적 성장은 투자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신호다. 그러나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성장은 '거품'일 수 있다. 회계를 안다는 것은 숫자를 읽는 기술이 아니라, 숫자의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지속 가능한 실적 성장인지, 회계적 트릭인지 구분하는 기준은 결국 다음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익은 늘었는가?”가 아니라 “이익이 왜 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제 나는 실적 발표를 보면 가장 먼저 영업이익과 현금흐름표를 본다. 그리고 IR 자료를 통해 그 배경을 분석한다. 그렇게 할수록 숫자 뒤의 진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투자에서 실수는 피할 수 없지만, 반복은 피할 수 있다. 회계는 그 반복을 줄여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 본 콘텐츠는 투자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학습 및 정보 제공용 자료이며, 실제 투자 판단은 독자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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